도서/소설

비행운 : 독후감

Chipmunks 2018. 4. 14.
728x90


대학교 독서 커뮤니티를 계기로 김애란 작가님의 '비행운(飛行雲)'을 한 줄 한 줄 곱씹어봤다. 비행운 (飛行雲) 이란, 차고 습한 대기 속을 나는 비행기의 자취를 따라 생기는 구름 이라는 뜻이다. 소설을 통틀어 봤을 때 차고 습한 대기 속은 여러 단편작의 주인공들인, 그들의 현실처럼 보인다. 따뜻하지도 적당히 기분 좋게 건조하지도 않은, 불쾌하고 바라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조그마한 희망, 실존하는 구름(雲)을 좇지만, 결국 그들이 바라봤던 구름은 근본이 없는, 실체가 없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게 특기(特技)인 비행운 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행운(幸運)을 지니지 못한 비행운(非幸運) 일지도, 대다수는 평범하게 지나갈 열구름 행운(行雲)이 아닌 비행운(非行雲)의 삶을 지닌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소설 속 인물들 이지만 바로 내 근처에, 혹은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속에, 분명히 실존해 숨 쉬듯 보인다.


김애란(金愛爛, 1980 ~ ) 작가님은 대한민국 소설가로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원 극작가를 졸업하고, 단편 <노크하지 않은 집>으로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소설부문)을 수상하여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그녀의 소설에는 '생활'과 관련한 소재도 많다. 주인공들은 매우 힘겹고 애쓰는 노력으로 '겨우' 평범한 생활을 연명한다. 비행운 단편 소설집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 '큐티클', '호텔 니약 따', '서른' 의 작품에서 서슴없이 드러난다.


혹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 처럼 사실 비행운을 좇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같은 20대 초중반들에게 다시금 삶을 돌아보게 해준다. 읽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아래는 마음에 들었던,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들의 리뷰를 첨부한다. 개인적으로 인간관계와 관련해 극단적인 사례들이 인상 깊었다.


- '너의 여름은 어떠니'

살면서 내가 가장 세게 잡은 누군가의 팔뚝이 ······ 갑자기 목울대로 확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

'많이 아팠을 텐데······' 하고. 천장 위 형광등은 여전히 꺼질 듯 말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 44P


나. 대학교 선배. 어렸을 적 그 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처.


주인공은 철학과를 졸업한 30살 무렵의 여성이다. 친구의 장례식에 갈 준비하던 도중, 대학 시절 동경하고 좋아했었던, 과 선배의 연락을 2년 만에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우울하다면 우울한 그런 이야기 전개이다.


대학 시절 꽃 피어오르는 연애 감정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

그러나 졸업할 때 즈음, 갑작스런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한 없이 추락하는.

그런 광경을 '너의 이름은 어떠니'를 통해 맛 보았을 때의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고 나. 혹은 내 주변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아니 겪고 있는 중이다.

비상하기 위해 추락하는 어른들.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치 않게, 작거나 큰, 적거나 무수히 많은 상처들은 사람들 속에서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 처럼.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


- '서른'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297 P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그 애가 잘 있으리라고 확신한 건. 언제 어디서든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세상과 '맞짱'뜨고 있을 거라 믿어버린 건요. 그런데요, 언니, 그 애가요......

얼마 전, 엄청난 빚에 시달리고 파탄 난 인간관계를 견디다 못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315 P


 편지의 시작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에게 안부를 묻고,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차근차근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상황을 고해성사(?)하듯 서술한다. 왜 고해성사라고 표현 했냐면, 그녀는 주변 인간관계를 돈으로 승화시키는 일명 다단계에 빠져, 자기를 가장 잘 따랐던 제자의 삶을 파탄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 단편작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했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다단계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다단계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간의 실을, 인간관계를 어떻게 좀먹는지 그게 어떤 극단적인 사태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여기서도 현실과 이상이라는 비행운의 속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이 드러난다. 파릇파릇한 청소년기, 대학 신입생, 20대 때, 자기는 특별하다고 이 모든 것은 내가 얻을 빛나고 아름다운 미래의 "과정"일 뿐이라고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그렇지만 30대 때는 모든 것이 "결과"로 보인다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재수생활을 했던 주인공, 무엇이든 될 것만 같았지만 졸업할 때 즈음, 잦은 휴학의 영향으로 적지 않은 나이가 됐다. 불문과에서 취업은 커녕, 나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그녀에게 다단계라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헛된 기대감이, 배웠기 때문에 자기는 절대로 다단계의 굴레에 빠지지 않고 돈 만 벌고 빠져나가겠다는 오만이, 급속도로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인간관계를 잃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곳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끊어 버린 인간관계 중, 인용문과 방금 전 문단에서 쓴, 주인공을 최애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10대 때 그렇게도 쾌활하고 성격 좋은 제자를 다단계로 끌어 들여 결국 빚에 자살시도까지 하는 등 젊은 나이에 삶이 파탄됐다... 그 제자가 느꼈을 배신감과 절망감, 두려움 모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됐다.


이 책을 덮고나자,  나는 절대로 다단계에 빠지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지도, 민폐를 끼치지 도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서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 2. 바캉스  (0) 2018.04.23
나무 : 1. 내겐 너무 좋은 세상  (0) 2018.04.19
비행운 : Day 8. 서른  (0) 2018.04.03
비행운 : Day 7. 호텔 니약 따  (0) 2018.04.03
비행운 : Day 6. 큐티클  (0) 2018.04.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