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설

비행운 : Day 8. 서른

Chipmunks 2018.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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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297 P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그 애가 잘 있으리라고 확신한 건. 언제 어디서든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세상과 '맞짱'뜨고 있을 거라 믿어버린 건요. 그런데요, 언니, 그 애가요......

얼마 전, 엄청난 빚에 시달리고 파탄 난 인간관계를 견디다 못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315 P


 편지의 시작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에게 안부를 묻고,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차근차근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상황을 고해성사(?)하듯 서술한다. 왜 고해성사라고 표현 했냐면, 그녀는 주변 인간관계를 돈으로 승화시키는 일명 다단계에 빠져, 자기를 가장 잘 따랐던 제자의 삶을 파탄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 단편작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했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다단계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다단계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간의 실을, 인간관계를 어떻게 좀먹는지 그게 어떤 극단적인 사태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여기서도 현실과 이상이라는 비행운의 속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이 드러난다. 파릇파릇한 청소년기, 대학 신입생, 20대 때, 자기는 특별하다고 이 모든 것은 내가 얻을 빛나고 아름다운 미래의 "과정"일 뿐이라고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그렇지만 30대 때는 모든 것이 "결과"로 보인다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재수생활을 했던 주인공, 무엇이든 될 것만 같았지만 졸업할 때 즈음, 잦은 휴학의 영향으로 적지 않은 나이가 됐다. 불문과에서 취업은 커녕, 나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그녀에게 다단계라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헛된 기대감이, 배웠기 때문에 자기는 절대로 다단계의 굴레에 빠지지 않고 돈 만 벌고 빠져나가겠다는 오만이, 급속도로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인간관계를 잃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곳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끊어 버린 인간관계 중, 인용문과 방금 전 문단에서 쓴, 주인공을 최애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10대 때 그렇게도 쾌활하고 성격 좋은 제자를 다단계로 끌어 들여 결국 빚에 자살시도까지 하는 등 젊은 나이에 삶이 파탄됐다... 그 제자가 느꼈을 배신감과 절망감, 두려움 모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됐다.


이 책을 덮고나자,  나는 절대로 다단계에 빠지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지도, 민폐를 끼치지 도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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