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 콘클라베(Conclave, 2024) : 신앙을 모르는 자의 후기 [약스포] 콘클라베(Conclave, 2024) : 신앙을 모르는 자의 후기](http://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주의. 약스포가 있습니다.
최근 미키17을 즐겁게 관람하고, 다른 영화도 더 보고 싶어졌어요.
'콘클라베'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몇 달 전,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도 재밌게 읽은 터라,
그 소설에 등장하는 우주 연합체를 '콘클라베'로 명칭을 따온 것이 기억이 났어요.
그 기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종교에 무지한 터라, 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인간의 도덕과 신념, 철학 중심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해석해 봤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차곡차곡 정리한 글입니다.
관람 직후에 작성한 터라 따끈따끈합니다. 😁
'콘클라베' 영화 배경
우선 작중 배경을 이해해봤습니다.
저는 개신교니, 천주교니, 가톨릭이니 구분조차 안되는 사람입니다. (이마저도 검색으로 방금 알았어요. 😅)
저도 모르게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할 수 있으니,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대중적으로 말하는 '교회'가 아닌, '성당'의 근원지구나 싶었습니다.
한 종교의 대표자인 '교황'이 있습니다.
교황의 죽음(선종) 이후, 빈 자리를 비공개로 선출하는 기간이 시작됩니다.
이 기간에 열리는 게 바로 '콘클라베' 입니다.
선출 공간이 외부와는 고립되었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외부 언론과 정보 검열을 위해, 철저히 외부를 분리시킵니다.
심지어 전파를 방지해 도청까지 막는 공사까지 진행되죠.
'문명'이 비집을 틈을 봉쇄하고, '인간성' 본연만을 조명시킵니다.
소란스런 외부로부터 문을 걸어 잠구고,
정숙한 투표 공간으로 오기까지.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대비를 연출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반인이 바라보는 '과연 저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이었습니다.
때론 현실적인 권력의 민낯과
때론 비현실적으로 '종교'라는 특수한 배경에서의 고뇌하는 인간상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추기경' 입니다.
많은 책임을 따르고 행할 수 있는 역할까지 '맡으신' 분들입니다.
나이가 많은 50대 이상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같은 교리를 보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라는 점이죠.
흔히 인생에서 성공만 한 사람은 자신의 방식이 틀린 적이 극히 적었기에,
앞으로도 내 방식이 틀리지 않을 거라는,
주위에서 이해하기 힘든 고집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불혹'의 나이를 지났다는 자끼리 모였다는 점에서
'갈등'이 필연적으로 모습을 보일 거라는 점이 흥미롭죠.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다."
초반에 주인공인 로렌스의 대사로 이 영화의 메시지를 포착했습니다.
신앙심의 본질은 '의심'이며, 끊임없이 의심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도 이 '의심'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진정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는...
결국 이 의심은 '외부'로 향해선 안되고
나 자신, 즉 '내부'로 향해야 마땅함을 전달합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확신'과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은 모래성과 같으며, 보잘것 없는 인간의 사고로는 결코 쟁취할 수 없습니다.
신기루는 사라지고 그 에너지는 '의심'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의심'을 가진 상황에서
결국 '교황' 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는 사람은 누가 될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무엇이 다르기에,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걸까요.
그 과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도, 영화 관람의 또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의심'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의심의 '방향'입니다.
의심을 외부로 돌리느냐, 내부로 돌리느냐의 차이가 도드라졌습니다.
등장인물끼리의 갈등,
작중 등장하지도 않는 선대 교황의 수읽기,
주인공 로렌스의 스트레스와 자기 비하,
모두 허울뿐인 '확신' 아래에서 끊임 없이 의심합니다.
'의심'을 외부로 돌린 인물은 쉬운 선택을 한 셈이죠.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십년간 누구보다 절제하고 교리를 지킨 이들마저도,
의심을 내부로 향하는 건 훨씬 어렵고 고통스러움을 방증합니다.
주요 인물들과 주인공인 로렌스 추기경은 자신의 신념과 욕망,
선택을 끊임없이 재검토하며 내면의 진짜 갈등을 마주하게 됩니다.
단순히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본질과 신념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죠.
자신부터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하지 못하는 남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일까요?
한 종교 내에서 도덕적으로 위대한 자의 뒤를 잇기까지, 또는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이해하고 마주해야함을 시사합니다.
성장의 부모는 의심이다.
작품 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의심'을 마주한 인물은 모두,
본인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비로소 성장이 시작됩니다.
작중 흔히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대사를 보았습니다.
현실에서도 식전 기도, 예배 기도 등을 많이 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도문을 외우고, 상황에 맞게 바꾸기도 하며, 모든 사람들이 따라하는 모습에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고, 현실에도 그렇고, 이런 의심이 싹트곤 합니다.
저 분들은 과연 본인이 말한대로 행하실까, 그렇다면 어떻게 확신하실까,
스스로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한글자 한글자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계실까,
단순히 습관처럼 말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등등...
작품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기도를 말하는 데...
과연 그 말대로 스스로 의심하며 행동하고 있는가, 도 관람 포인트였습니다.
'교황'의 자리를 얻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면
결국 '의심'을 누가 누가 잘하냐의 싸움인 건
불보듯 뻔하겠죠.
그 인물이 한 '의심'을 통해서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할 비법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종교를 넘어서, 모든 관람객에게도
올바른 '내면의 의심'으로 더욱 성숙하게 성장하도록
독려하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 받았습니다.
마무리
원작이 소설이더라고요!
분량상 영화와 다른 점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베니테스 추기경이 영화에서 고립된 연출이 많이 있었는데,
소설에서는 사교성도 적당히 갖춘 인물로 보여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베니테스 추기경의 배경을 더욱 돋보이도록 연출하기 위해서,
영화 장치로 성격적인 부분을 강조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영화에서 부각되지 않은, 주인공의 권력에 관한 내면 속 갈등이 빠진 점도 아쉬웠습니다.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주인공에게 투표가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 가는데요.
다른 등장인물 또한 '너한테 유리하니깐 속으로 기분이 좋겠네?' 라는 의심을 계속 던지죠.
이런 의심을 받고, 스스로도 교황이 되기를 극구 꺼려했던,
주인공의 내면 속 갈등을 조금 더 표현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존경했던 선대 교황과 대비되는, 콘클라베 추기경들의 진면을 보게 되는데요.
소설에선 스스로를 '이 또한 주님의 뜻 아닌가?' 으로 표현한 점과
교황이 될 때 쓸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정한 모습으로,
이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성장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됐을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이라면... 저도 머릿 속에서 희망회로가 돌 것 같긴 하거든요. ㅋㅋㅋ
아무래도 후보자인 이상,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다른 반복되는 투표 장면과 크게 대비되지가 않은 터라, 솔직히 말하면 놓쳤습니다. 😅
'콘클라베'에서 과반수가 나올때까지,
계속 고립된 채로 투표를 하게끔 만든 규칙 자체가...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을 하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심을 중폭시키는 같은 언어, 같은 나라의 추기경 휘하 무리간의 표를 위한 정치 압력,
종교 비판을 막기 위해 외부의 시선을 극히 신경써야 하는 압력,
알 수 없는 공포를 유발하는 외부의 물리적인 압력 등등...
긴장감있게 끊임없이 '내면'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압박하는 연출을 넣은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립된 채로 스스로 의심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일부러 고통스럽게 압박하는 환경을 만들 필요도 있다,
를 시사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중에서 얼마나 순간 순간을 의식하며,
얼마나 고립된 채로 스스로를 향한 의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우리는 정말로 성숙하게 성장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담)
영화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 절대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었어서요. 😅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학생도 ‘놓치면 안되는데’ 중얼거리며 조급해하시길래, 뭔가 싶었습니다.
버츄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공연이 있던 시간대였더라고요.
새삼 신기했습니다.
작중 중간 중간에 미술 그림을 비추곤 합니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미술 작품인지, 어떤 의미로 작품을 보여줬는지 천천히 알아가고픈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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